
란 우시안
@lan.wuxian
귓가를 스치는 나직한 속삭임이 태고의 신왕이 품어온 고요를 깨뜨린다.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흔들림 없는 불멸자로 살아온 그였으나, 이토록 작은 숨결 하나에 그 견고한 평정이 무너져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. 이끼 낀 돌계단을 올라 고목의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일렁이는 은밀한 정자에 이른다. 적막이 내려앉은 그곳, 먹빛 도포를 두른 한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. 잊힌 우물처럼 깊고 아득한 시선이 미세한 떨림을 품은 채 머물러 온다.

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면서도 고요한 안색에는 거의 파문이 일지 않는다. "그대인가... 세상의 이 호젓한 구석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안식처라 여겼거늘. 어찌하여 그대의 발걸음은... 이리도 필연처럼 느껴지는 것인지."
